'솔연(率然)'처럼



‘솔연(率然)’은

중국 상산(常山)의 전설적인 뱀으로 싸움기술이 능하다.

머리를 치면 꼬리로 덤비고 꼬리를 치면 머리로 덤비는가 하면,

허리를 치면 머리와 꼬리로 반격을 하는 영물이다.


싸움에 능한 자를 ‘솔연’에 비유하였으니(善用兵者 譬如率然)


머리를 쳐오면 허리를 베고,

손목을 쳐오면 머리를 치고,

물러서면 찌르고,

찔러 오면 손목을 자르는

劍術의 이치가 ‘솔연’의 지혜에 있다.

(20060124화)

 

 

 

***

善用兵者 譬如率然, 率然者 常山之蛇也.

擊其首則尾至, 擊其尾則首至, 擊其中則首尾俱至.

<손자병법>


 

 



 

 

 

‘劍에 의지하여 劍에 빠지지 말며’

 

 

“말에 의지하여 말에 빠지지 말며

생각에 의지하여 생각에 빠지지 말며

문자에 의지하여 문자에 빠지지 말며”

 -출처:大集經 ‘月藏分’/無比講說-

 

劍에 의지하여 劍에 빠지지 말며

단지, 그 뜻만 취하고 스스로 요달了達할 뿐!

(20060707웅)

 

                 粟子一植/무위당장일순

  정성이야 저잣거리 ‘군고구마’글씨에 비하랴? 겸손하시다.

  좋은 말씀은 문중이 달라도 언제나 하나로 통한다.

  無爲堂은 크리스찬이면서 유뷸선으로 안온하시다.


***

말에 취하고 생각에 취하고 문자에 취한다.

완장까지 두르면 하늘까지 찌르는 세상이다.

高聲不敗? 겸손하면 쪽팔리고 손해까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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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다루듯 말을 다스려야’

 

 

口是禍之門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요

舌是斬身刀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니

閉口深藏舌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安身處處宇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풍도馮道(唐代882-954)의 ‘舌詩’-


입은 칼과 같이 양면성을 지닌다.   

입은 재앙의 문인 동시에 진실의 문이기도 하다.

입은 무섭고도 두려운 힘을 지니고 있다.

입은 살인검인 동시에 활인검이기도 하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칼 다루듯 말을 다스려야 한다.

(20060527웅) 

 

  

 

***

가끔은 할머니가 또는 소녀가 전철에서 혀를 휘두른다.

대의를 위해 칼을 쓰되 뽑지 않음이 더 지혜롭다고 했다.

굳게 입 다물듯, 한 일(一)자로 한 칼의 획, 안 될까? 

***

칼이 안정된 자는 말이 없다고 한다.

칼을 안정시키려면 말 부터 줄여야한다.

칼을 절제하면 말이 간략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는 상사가 아니다’

 

 

지도자는 상사가 아니다.

리더십의 역할이다.

현대의 ‘복잡한 인간형(Complex Man)’은

다양한 욕구만큼 동기 또한 차이가 있다.

때로는 심리학자로, 연출가로, 의사로 역할이 요구된다.

(20060131웅)

 

 

              이미지출처; 대한검도회kumdo.org

 

***

박칼린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전체는 단순한 부분의 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장(場,field)의 이론을 보여준 코러스리더십이다.

우리 모두는 다를 뿐, 틀리지 않다는,

인간(생명)은 존엄[절대평등]하지만 능력에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인정할 때,  

그리고 그 차이를 살릴 때,

공동체는 '공정'을, ‘정의’를 넘어 평화롭다.

남자를 울린 리더십, 박칼린 판타지아!

(20100930웅)

 

***

  말끝마다 더러운 역사라며 

  공권력이 무너지면 민주화의 승리요.

  법 집행은 독재탄압이라는 떨거지들이

  완장을 차겠다며 설칩니다. 

  쪽팔리는 서울입니다.

  (20110923)

  

 

 

 

 

 

‘버리는 것도 기술이다’


 

雖誦習多義 가르침[경전]을 아무리 많이 안다 해도

放逸不從正 방일하여 바른길에 이르지 않으면

如牧數他牛 남의 소떼 셈하는 소몰이꾼에 불과해

難得沙門果 사문과[得道]를 얻기 어려우리<法句經 ‘雙敍品’>


기술을 많이 안다고 능사가 아니다.

옷장을 열어보면 쓸 만한 것은 한 두 벌이듯,

배운(아는) 만큼 버리는 것도 기술이다.

승부욕(貪)·분노(嗔)·어리석음(痴)도 덤으로 버려라.

(20070206웅)  

 

 

 

***

주평만朱萍慢은 가산까지 탕진하며 龍잡는 기술을 배웠답니다(屠龍技).

허나, 쓸데없는[無用] 비기秘技이지요.

뭐니뭐니 해도, '기본基本이 비기秘技고 명기名技'입니다.

 

 

 

 

‘귀신이 곡하는 소리’


 

‘의심이 귀신을 낳는다(疑心生暗鬼)’고 했다.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고는 옆집 아들을 의심했다.

걸음걸이를 보니 도둑 걸음걸이고

얼굴을 보아도 도둑 상이고

말하는 모양을 보아도 도둑 말투고

행동거지 어느 하나 도둑으로 보이지 않는 데가 없다.

얼마 되지 않아 밭두렁에서

뜻밖에도 일어버린 도끼를 찾았다.

이튼 날 다시 옆집 아들을 보았다.

어디를 다시 봐도 도무지 도끼도둑 같지는 않았다.

(列子‘說符’篇,재구성) 


침을 맞으러 다니다 핸드폰을 잃고는

틀림없이 조폭(?)같은, 그 ‘배불떼기’일거라고

文身하며, 배로 숨 쉬는 꼴하고는,

그 침방에는 나 말고는 그 친구뿐이었고...,

이튼 날 새벽

귀신이 곡하는 소리를 들었으니,

[두드드득 두드드득~~~두드드득]

‘아니, 핸드폰이 왜 신발장에 들어 있담?’


身‧口‧意 - 三業을 경계하라 했으니.

의심, 마음[意]으로 짖는 악업이다.

그러고 보니 요통이 더 심한 듯싶다. 카르마?

(20040627) 

 

 

            모야? 또? 나를...


***

‘귀신 곡할 노릇’이라며 정신 사납게 광복새벽부터 핸드폰을 찾아 헤맨다.

“아, 구시렁댄다고 핸드폰이 알아주남? 냉장고나 열어봐욧!”지르니,

채신머리없이 깔깔, 용하다며 “도(刀) 닦더니, 돗자리 깔아도 되겟쑤!”

(20100815)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비바람이 세게 불었다

태구련(太九連)과 언복(彦福)이 만든 환도를

충청수사와 두 조방장(助防將)에게 한 자루씩 주었다>

-1595(을미)년 7월21일, 난중일기

 

백성이 만들어준 칼이다.

이순신 장군은 하늘에 맹세하기를

칼에 새겼으니(劍銘).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한 칼에 쓸어버려 강산을 피로 물들이리라.’

 

현충사에 소장된 이순신의 장검 2자루(보물326호)의 검신(劍身)에는

'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茂生作'으로 되어 있다고.

검신에는 ‘貴連’으로 쓰고 ‘난중일기’에는 ‘九連’으로 불리는가 하면.

‘茂生’‘彦福’이 하며, 도공들의 이름으로 보아 이른바 ‘쌍것들’이라고.

공께서는 이들 ‘쌍것들’이 만들어 준 칼에 맹세를 새겼다.

그 한자루에 ‘三尺誓天 山河動色(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강산을 떨게 하리라)’

또 한자루에 ‘一揮掃蕩 血染山河(한 칼에 쓸어버려 강산을 피로 물들이리라)’.

(20070411웅) 

 

 

 

***

연초이면 신임장군(별)에 대통령은 칼을 ‘하사(下賜)’한다.

그 화면을 볼 때마다 엉뚱하게 ‘貴’자와 ‘九’가 오버랩되고는 하는지,

금빛 찬란한 문양 때문일까?

예하 장수에게 칼을 준다 함은 선물이 아니라

지휘권을 칼같이(엄히) 하겠으니 군기를 세우라는 뜻일게다.

오늘(4월28일)은 공의 탄신기념일이다.

 

장군이시여!

칼을,

군기를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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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여움이 생기면 사랑은 잊혀 진다’

 

 

말(馬)을 사랑하는 사람은

광주리로 똥을 받는가 하면

대합(자개를 박은 조개껍질)으로 오줌까지 받는다.

그러나 말 잔등에 앉은 모기를 잡으려고

갑자기 손바닥으로 치면

말은 놀라 재갈을 끊고

주인의 머리를 깨거나 가슴을 떠받는다.

노여움이 생겨 사랑이 잊혀 지기 때문이다.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莊子, ‘人間世’).


칼에 너무 힘이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형을 보여준다(示範)는 것이

토끼 같은 검우들을 놀라게 하여

너무 민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뜻이 지극해도 사랑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60717웅)

 

 

 

***

‘찌름’은 의표를 찌르는 만큼 '베기'보다 빠르며 파괴적입니다.

실전에서는 ‘살을 주고 뼈를 자르는’ 치명적인 기술이지요.

交劍之友, 목은 찌르되 자존심은 지르지 말아야...검도뿐이랴?

           

 

 

 

 

'생색내지 말라는'

 

  

[菩薩於法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보살은 응당 법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布施)를 행할지니

이른바 형상(色)에 머물지 않는 보시이며,

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는 보시이니라.”<금강경4>

 

무릇,

‘베푼 것 생각 말고 은혜는 잊지 마라(施恩勿念 受恩勿忘)'고 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도 했다.

제발, 생색내지 말란다(無住相布施).

(20070813웅)

 

 

 

***

“네가 감히,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너, 술 한 잔 사는 거 못 봤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쥐꼬리만큼 쌓은 복마저 날린다는.

(20090511)

***

내가 베픈게 없는데, ‘잊지 않겠다.’며 허리부터 굽힌다.

‘허리병’이야 선거만 끝나면 난다고 하지만,

口是禍門, 그 많은 口業을 다 어찌하려는지.

(20100410)

 

 

 

 

‘반야검(般若劍)’


 

“칼날이 무뎌지면 칼로서 기능은 끝난다.

칼이 칼일 수 있는 것은

그 날이 퍼렇게 서 있을 때 한해서다.


누구를 상하게 하는 칼날이 아니라,

버릇과 타성과 번뇌를 가차 없이 절단하는

반야검(般若劍), 지혜의 칼날이다.


서슬 푸른 칼날을 지니지 않으면,

타인은 그만두고라도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 없다.”

<법정‘텅빈충만’에서 재구성>

 

서슬 푸르게 칼을 갈고 닦으시란다.

탐(貪)스러운 내 마음을 베라신다.

성난(嗔) 내 마음을 베라신다.

어리석은(癡) 내 마음을 베라신다.

(20100313웅)

 

 


***

대의(大義)를 위해 칼을 쓰라고 하지요.

허나, 칼을 쓰지 않음이 더 지혜롭다고 합니다.

반야검(般若劍)은 사악한 내 마음부터 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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