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 데뷔 이야기

              =월간 문학세계(2011.4월호)=

 

 

이수화

호는 수당,「현대문학」등단, 미국 뉴욕 IAEU 명예문학박사, 시문학상, 영랑문학대상 외 다수 수상, (사)세계문인협회 고문, 미디어 신문 논설위원, 월간「문학세계」상임고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 현대시인협회부회장 및 지도위원, 미당 서정주 시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고려대학교 문인회 시분과위원장,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동문회 상임고문 역임.


  필자가 「현대문학」지 미당(未堂) 스승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한 지 근 50년이다.

  그 50년간 「현대문학」지를 비롯한 문학지에 시평란이 적잖았다. 일간신문도 시평란이 있었는데 <한국일보>시월평란(원로 김종길 선생 담당)에 큰 격려를 받은 기억이 70 넘은 노인을 어릿거린다. 데뷔작은 처녀작인 터이니 추천스승께나 격려하신 분에게나 얼마나 감읍한 일인가. 그럼에도 데뷔작(처녀작)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경우가 향다반이다.

  추천사가 달려 있으니 그렇기도 하겠으나 작품이란 평자도, 지면도 바뀌어 여러 면에서 평가받아 마땅한 일일 터이다.

  본지 3월호 ‘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정웅의 「천생 나팔꽃」과「한칼[一刀]」을 읽으면 독자는 ‘아, 정웅 시인은 처녀작다운 처녀작(데뷔작)들을 내놓았구나.’ 속으로 감탄할 듯하다. 아니면 정반대일지도 모를 일...시 작품은 독자의 몫이니까.

  여기서 잠시, 한국 시문학 100년 사상 우뚝한 두 시인의 처녀작만 읽고 가자.


  ①

  머언 산 굽이굽이 돌아갔기로

  山 구비마다 구비마다

  절로 슬픔은 일어...


  뵈일 듯 말 듯한 산길

  산울림 멀리 울려 나가다

  산울림 홀로 돌아 나가다

  ...어쩐지 어쩐지 울음이 돌고


  생각처럼 그리움처럼...


                    -박목월「길처럼」전문


  ②

  덧없이 바래보든 壁에 지치어

  불과 時計를 나란히 죽이고


  어제도 내일도 모래도 아닌

  여긔도 저긔도 거긔도 아닌


  꺼져드는 어둠속 반딧불처럼 까물거려

  靜止한 「나」의

 「나」의 서름은 벙어리처럼...


  이제 진달래꽃 벼랑 햇볕에 붉게 타오르는 봄날이 오면

  壁차고 나가 목매어 울리라! 벙어리처럼

  오 - 壁아.


                  -서정주「壁」전문


  예시는 우리나라 시문학사의 걸출한 두 시인이 1930년대에 쓴 처녀작들로 ①은 저 유명한 「나그네」나 ②는 명작 「국화 옆에서」를 능가한다고 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분들의 처녀작을 폄하할 아무런 까닭이 없이 말씀이다. ①의「길처럼」이나 ②의「壁」의 어디가 시답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분들의 처녀작이 그 후의 많은 걸작들에 미치지 못함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에둘러 정웅의 처녀작을 보자.


  ①

  몇 날을

  심상치않다 싶더니

  유월의 어느 날 아침

  솔가지 울타리가 온통 보랏빛이라니,


  누가 점령군이 아니랄 까봐

  나발까지 부는 폼들이

  빨래 줄도 넘본다.


  천생 나팔꽃이다.


                -「천생 나팔꽃」전문


  ②

  찌를 듯(‧)

  좌로 비키고(∕)

  우로 비켜(∖)

  굳게 다문 한일자(一)

  한 획


                -「한칼[一刀]」전문


  예시①이 대상의 서정적 자아화, 즉 나팔꽃의 빛깔, 생김새, 빨랫줄 감아 오르기 등의 식물학적 생태에 대한 군사적 이미저리 조형성에 리리시즘 미학 의도가 있다면 ②는 아예 검도의 진리를 포말리즘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활인검의 정신이 한 칼에 있음을 시인은 그의 시정신으로 삼고자함일 터이다. 처녀작으로 이쯤 되면 저 앞의 살핀 문학사적 대가들의 처녀작 이후 이룩한 걸작들 못지않은 대작들이 생성돼 나오리라 믿겨진다.

  처녀작 이미저리가 나왔으니 말씀이지만, 노익장이신 황금찬 선생은 1950년 「문예」지에 처녀작 「경주를 지나며」가 추천돼 등단했는데, 시문학 사전에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 궁금하기 짝이 없으나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1953년 9월호「문예」지의 황금찬 추천시「경주를 지나며」에는 황금찬(黃錦燦)이 아닌 황금환(煥)으로 인쇄돼 나왔다. 편집진의 박용구 선생 실수로 그 다음호에 정정되었다.

   내친 김에 후예 대가들이 된 문인들의 데뷔 당시는 어땠을까. 대가가 된「토지」의 작가 故박경리 선생은 뜻밖이라고 여길 독자가 많겠지만, 처음(1950년대 서울 환도 직후)명동 지하 다방 문예 싸롱에 김동리 선생께 시 원고부터 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상(想)은 좋은데 표현(表現)이 틀렸다.”

   간단한 말씀 한마디였다는 것이다. 일제하에 교육을 받아 내 나라의 어휘에 미숙했던지라 어휘 구사란 사실 억지춘향일 수밖에 없었다는 박경리 선생의 토로이다.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담배 연기 자욱한 지하 다방에서 어느 날 김동리 선생의 이 한마디로부터 대하장편「토지」의 바탕이 마련되기 시작한 것이다.

  김동리, 황순원 선생 같은 소설 문학의 대가들은 시단에 데뷔도 했고 시집들도 낸 분들이지만 대작들을 소설로써 남기고 기세했던 것이다. 박경리 씨에게 소보다는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라고 했던 김동리 선생은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백로(白鷺)」가 입선했으니 미당 선생이 1936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壁」이 당선된 바와 비견되는 일이기도 하겠다.


  앞내 소에

  앞내 소 이무기 산다

  소낙비에도

  다시 나는 햇빛에도

  하늘 내음 어림인가

  쉰 길 물속에서

  이무기는 몸을 뒤친다


                -김동리 「이무기」전문


  이무기라는 전설적인 생명 존재를 강렬한 생명주의로 우리 눈앞에 현전케한 생명파 솜씨는 일품일 터이다.

  이른바 문단 데뷔에 얽힌 얘기를 대가들의 데뷔 당시 에피소드를 곁들여 정웅 시인의 데뷔작의 특성에 매혹되어 논급해 보았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탄 코엘로는 문학 외에도 활쏘기에 명수로 꼽힌다. 그는 활쏘기 스승에게 4년간 활쏘기 수업을 마스터한 소감을 말했다.

  “이제 저는 활쏘기의 여정을 절반쯤 왔겠습니까?”

  “아니지...활시위를 놓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에 앞서 활과 화살, 과녁에 대한 깊은 공부가 긴요하네. 90%의 여정에 이르렀다고 여겨야 활쏘기 마스터를 이야기 할 수 있다네.”

  시 공부도 마찬가지. 아니 마스터란 없고 평생을 쓴단들 그것이 보일까나.

  (월간 문학세계)

 

***

문단 거목들의 1930년대의 데뷔작,

박목월, 서정주, 김동리 선생의 에피소드에 끼이다니,

이런 영광일수가 없다.

[월평]에 감사말씀을 드리는 것은 결례일 것이리라.

叩頭感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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