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交劍之感’一考<검도는 ‘감’이 있어야 한다>(29)
검도는 ‘감(感)’을 잡아야 한다고 한다. 사범의 가르침을, 상대의 마음을, 기량을, 타격기도 등을 감 잡아 ‘단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감’이란 무엇인가?
‘느낌’, ‘느낀 생각’, ‘감도(感度)의 준말’, ‘통신기기 수신의 예민함의 정도’ 등으로 어떤 일에 대해서 눈치로 대략 알아차리거나 확신을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국어사전).
즉 깊은 수련에서 오는 상대방의 눈빛, 검선, 기술, 힘, 수련정도 등을 판단하여 대처하는 직감력을 의미하지 않는가 싶다. 좀더 정리를 하면, 검도의 감이란 오감(五感)으로 상대의 눈빛(色), 기합소리(聲), 기품(香), 칼 맛(味), 몸의 부딪침(觸) 등에서 감지되는 상대의 기량을 총체적으로 판단하여 반사(대처)기술이 작동되는, 오랜 수련과 경험에서 나오는 자기 확신적 직감이다.
흔히 ‘동물적 감각’에 비유를 하지만, 동물적인 감각이 생득적인, 선천적인, 본능적인 기질(성향)에 무게를 두는 것이라면, ‘검도의 감’은 피나는 노력과 수련결과로서, 후천적 학습으로 길들여진다는 점에서 다르다. 물론 천부적인 ‘감’이 있겠지만 갈고 닦지 않는다면 ‘감의 질(質)’ 제고는 기대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고 하겠다.
어떻게 하면 ‘감’을 잡을까?
마음과 마음의 교감(交感)을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한다면, 불선(佛禪)의 핵심사상으로 회자(膾炙)되는 ‘염화미소(拈花微笑)’는 교감(交感)의 진수(眞髓)로 심오한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는데 하늘에서 축하의 꽃비가 내리니, 그 중에서 꽃한송이를 집어 들고(拈花) 대중에게 보이시나 모두가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으나, 끝자리에 앉아있는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음(微笑) 지으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 : 인간이 원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미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 : 번뇌를 벗어나 진리에 도달한 마음)을 가섭에게 준다.”하였다고 하여 이를 염화미소라고 한다. 많은 제자 중에 가섭존자만이 부처님의 염화(꽃을 듬)를 ‘감’잡아 미소를 지은 것이다. 이를 테면 ‘텔레파시’가 통하는 마음불교의 극치라고 할 것이다. 가섭(迦葉)이 누구인가? 부처님 10대제자 중 두타제일(頭陀第一 : 수행제일)의 제자이다. 수행을 인정받아 석가모니 열반 후 제일지도자가 된 부처님의 수제자이다. 깊은 수행에서 오는 영적 교감이 아니겠는가? 오직 부단한 뼈를 깎는 수련만이 자기 확신적 직감력을 길러 영적인 ‘감’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김경남의 ‘검도정신’ 속에서도 해답을 찾아봄직도 하다(인터뷰 기사).
-나는 검도의 기본을 중시하고 자신에 맞는 검도를 하고 있다(하루 2시간 수련).
-기술습득 전에 반드시 할 수 있다는 마음자세와 득점과 연결시킬 수 있다는 정신자세를 지닌다.
-상대의 공격에 조금이라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다(출전경험).
-자신이 시도하는 기술은 반드시 득점과 연결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다(많은 연습을 통해).
-안된다는 느낌에 고개를 갸우뚱하지 말고 한 번 더 시도해 본다(연습과정 중에).
즉, 기본중시, 마음가짐, 자신감, 반복적인 연습, 출전경험 등에서 감을 찾을 것이다.
정말로 확신적 ‘감’이 작동되기를 원한다면 바보가 되라! 사범의 가르침을 믿고 진지하게, 우직하게, 바보스럽게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검도의 기초를 몸으로 익히는데 50년이 걸렸다.” 이 말은 일본 검성(劍聖)이라고 불리는 모치다(持田 盛二)선생의 유훈(遺訓)이다.
검도의 감을 잡는데 50년이 걸렸다니...정말 바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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